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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14 09:13:40 (*.47.1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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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FBI와 CIA의 對테러 교육
특히 美 FBI(연방수사국) 「폭발물 자료센터」 등 전문기구에서는 한국 측에 폭발물 탐지ㆍ폭발물 탐지犬(견) 훈련 요령 등을 제공했고, 美 CIA에서는 테러사건 분석자료ㆍ테러사건 진압 지휘 요령 등 對테러 「노하우」를 전수했다.
조직委에선 美 CIA전문 교관단을 초청해 安企部·내무부ㆍ국방부 등에서 선발된 요원들을 대상으로 1987년 중 경호와 對저격훈련 등의 교육을 실시했고, 1988년에는 위조여권 식별ㆍ외사감시ㆍ공항보안ㆍ人質犯(인질범)의 심리연구 및 협상기법 등의 교육을 받았다. 1988년 올림픽 직전까지 13차례에 걸쳐 미국 對테러 전문 요원 42명이 訪韓해 對테러 전문교육을 하고 돌아갔다.
당시 특전사령관이었던 閔丙敦(민병돈) 前 육사교장은 1987년 10월 당시 美 특수부대인 델타포스(Delta Force) 부대원들과 함께한 對테러 훈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특전사 對테러 실내훈련장에서 우리 대원들이 서로 마주보고 實彈(실탄) 사격을 실시했다. 특전사 707특수임무 대대원들과 함께 훈련하려고 內韓한 미국 델타 부대원들은 이 광경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리가 국제 테러리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올림픽경기를 서울에 유치하는 데 성공한 1981년부터이고 對테러 대책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것은 86서울 아시안게임을 앞둔 1980년대 중반부터였다. 그때 安企部의 노력으로 이 분야 선진국인 미국과 프랑스 등의 관계기관 내지 對테러부대의 지원을 받아 교육·훈련과 신형 장비에 있어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사실 對테러작전에서의 첫번째 어려움은 이 싸움이 프로 살인범들과의 대결이라는 데 있다. 즉 국제테러범들은 여러 번 항공기 납치, 폭파, 살인 등을 자행한 歷戰(역전)의 흉악범들임에 비하여 우리 대원들은 정신력과 체력, 전술과 戰技(전기)는 뛰어나지만 「살인」 경험이 없는 선량한 젊은이들이다. 선량한 인간은 부득이 살인을 해야 하는 순간에 주저하게 된다.
선량한 우리 대원들이 테러범들과 맞닥뜨려 그들을 죽여야 할 때 과연 주저없이 그들에게 실탄을 발사할 수 있겠느냐 하는 의문을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캄캄한 실내 전투사격장에서 고글(goggle, 夜視장비)을 쓰고 상대방의 왼쪽 가슴(심장)에 실탄을 사격하는, 극히 위험한 훈련을 반복했다.
왼쪽 가슴 위에 방탄복의 천을 오려서 두껍게 여러 겹을 덧씌운 「私製(사제)방탄복」을 입히기는 했지만 살아 있는 사람(전우)의 심장에 실탄을 발사하는 쌍방사격훈련을 하는 것은 진짜 힘든 일이었다.
』
올림픽이 가까워짐에 따라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 등 각국 정보기관 요원, 올림픽 관계자, 주한 외교사절 등 16개국 28개 기관의 236명이 안전통제본부를 찾기도 했다.
안전통제본부는 세계 각국의 정보기관이 제공한 정보자료를 다각적으로 분석해 對테러 기본 정보자료집으로 만들어 43종 8265부를 발간했다. 이 책자들은 대통령 경호실 등 유관기관에 배포해 88서울올림픽의 안전활동 업무수행에 큰 보탬이 됐다고 한다.
航母 엔터프라이즈號와 미드웨이號 한반도 배치
美 에너지省은 1984년 LA올림픽 당시 核사고 조사팀(NEST: Nuclear Emergency Search Team)을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1987년 8월 안전통제본부에 88올림픽 기간 중 核사고 조사업무를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안전통제본부는 이 제의를 과학기술처에 의뢰했고, 과학기술처 간부가 미국에 출장해 核사고 조사팀의 현황을 청취하고 미국에 지원을 요청했다. 韓美 간 협의에 따라 한국 核사고 조사팀을 안전본부內에 설치했다.
조사팀의 임무는 核을 이용한 테러에 대한 정보분석, 국내 주요 방사선 시설의 동향파악은 물론, 주요 올림픽 시설 및 김포공항에 대한 방사능 감시와 核 및 방사능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었다.
1988년 9월 김포공항에 입국하는 소련 선수단의 반입 물품을 검사한 결과, 微量(미량)의 방사성 물질이 확인되었으나 사소한 것으로 밝혀져 반입물품을 보세창고 보관하다 반출토록 조치했다고 한다.
88서울올림픽 대회 기간 중 북한의 무력 도발 기도를 억제하기 위해 우리 軍은 韓美연합 작전체제를 유지해 나갔다. 美 국무부는 더윈스키 차관을 두 차례 한국에 보내 안전에 관한 韓美 양국의 협조체제를 만들도록 했다. 黃圭雄 당시 안전국장의 말처럼, 서울올림픽 安全의 제1선은 韓美동맹체제, 제2선은 軍警의 경계, 제3선은 경기장 진행요원들의 안전관리, 제4선은 조직위 관계자들이었다.
올림픽 기간 중 美軍의 「무력시위」도 이어졌다. 美軍은 美 7함대 항모인 미드웨이항모전투단과 엔터프라이즈 航母(항모) 전투단과 뉴저지 전함 전투단 등 막강 해상전력을 한반도 근해지역에 展開(전개)하고 극동지역 주둔 美軍의 훈련을 한반도 인근 해역에서 실시했다.
주한미군은 공격헬기, 스팅어미사일 등을 수도권 주요 지점에 배치했다. 美軍은 對北 감시활동도 한층 강화했다.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와 SR-71기, 전술위성 등의 항공정찰을 통한 정보수집 활동을 늘리는 등 조기경보 및 전장 감시 체제를 강화했다고 한다. 주한 美 공군의 제8 및 15 비행단을 최대한 운용, 24시간 공중 초계 임무와 대기 태세를 강화하기도 했다. 우리 軍도 1988년 8월부터 데프콘3 수준을 유지하면서 단계적으로 對北경계 수위를 높여 대회 직전에는 「진도개 하나」에 준하는 고도의 대비태세를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