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 3급 정보] ○…“여보,나 챔피언 먹었어. 마음 편히 운동하도록 뒷바라지 해준 당신이 너무 고마워.”

복싱나이로는 할아버지격인 42살에 한국 최고령 복싱챔피언에 오른 이경훈씨가 화제다.

이씨는 지난 26일 부천 드림타워 특설링에서 열린 한국미들급 전 챔피언 최광진(31)과의 타이틀매치에서 10년이 넘는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혈투끝에 10회 KO승을 거두었다.

그의 인터넷 팬카페(http://cafe.daum.net/TheArtisticBoxers) 게시판에는 오른쪽 주먹이 부상을 당하고도 왼 손 훅으로 상대를 꺾는 모습에 감동한 팬들의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 500만원에 30만원의 월세에 살고 있는 이씨는 그야말로 헝그리복서. 이씨는 “챔피언이 되는 순간 동양챔피언도 되어 고생하는 아내에게 전세라도 얻어주고 빚도 갚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초등학교 3,5학년인 두 아이를 위해서라도 동양챔피언 벨트를 반드시 따내겠다”고 말했다.

특전사 출신인 이씨는 지난 96년 군복무시절 부대 복싱대회에 중대 대표로 나가 우승했고 아마추어로도 잠시 뛴 적은 있지만 프로복싱에 본격적으로 뛰어든지는 3년밖에 안된다. 서울이 고향인 이씨는 군제대를 하고 춘천에 정착,개인사업을 하다 실패한 뒤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을 해야겠다며 전문복서의 길을 택했다.

이씨는 춘천에 아트복싱체육관을 차린 뒤 스스로 뼈를 깎는 훈련을 해왔다. 38세에 복싱에 입문,3년만에 5전4승1패라는 눈부신 노장투혼을 발휘하며 한국 미들급 랭킹 3위에 올라섰고 이번에 한국타이틀매치에 도전,챔피언에 올랐다. 그동안 이씨가 상대한 복서는 27살의 신인왕 출신을 비롯,10살 이상 차이나는 젊은이들이어서 이씨의 영광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동갑내기 아내인 장경선씨는 남편이 뒤늦게 복싱을 다시 시작한다고 했을 때 막무가내로 말렸지만 이제는 관원들의 빨래까지 챙기는 열렬한 후원자가 됐다.

 이씨의 노장투혼이 알려지면서 체육관을 찾는 사람들도 늘고 있으며 최근에는 이씨가 만들어낸 복싱 에어로빅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는 “복싱 에어로빅을 하면 운동 소모량이 많아 날씬해지고 샌드백을 치면서 스트레스도 풀 수 있어 여성들도 많이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나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시합 두달 전부터 하루 5시간 이상 강훈련을 해온 이씨는 “동양챔피언이 목표이지만 초인적인 노력으로 세계챔피언까지 도전해 볼 계획”이라며 “무슨 일을 하든지 나이가 문제가 되지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한국복싱사에 길이 남을 진정한 파이터가 되겠다”고 말했다. 춘천=국민일보 변영주기자 yzbyoun@kmib.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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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일이든 나이는 중요치 않아"  
  
‘불혹의 복서(boxer)’가 챔피언 자리에 올라 복싱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지고 있다.

지난달 26일 한국프로복싱 미들급 타이틀매치에서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한 이경훈 춘천아트복싱체육관 관장은 올해 42세다. 홀리필드나 타이슨 같은 ‘노장’ 복서들보다도 많은 나이다. 그는 부천 드림타워에서 열린 이 경기에서 31세인 챔피언 최광진과 혈투 끝에 10회 KO승을 거뒀다. 이씨는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자신감과 의욕이 중요한 거죠”라고 챔피언이 된 소감을 밝혔다.

이씨는 남들이 은퇴를 생각할 38세에 프로복싱에 뛰어든 늦깎이 복서 출신. 처음 글러브를 낀 것은 중학교 시절. 아버지가 글러브를 사갖고 와서 스파링 상대가 돼 주었다고 한다. 이후 복싱에는 관심을 갖고 있는 정도였다가 특전사 입대 후 부대 체육대회 권투시합에서 우승했다. 그 후 부대에서 열린 권투대회마다 출전, KO승을 거뒀고 제대 후에도 전국 아마추어선수권에서 우승을 했다. 이때 상무 권투팀과 프로복싱 등에서 입단 제의가 있었으나 이씨는 회사원의 길을 택했다.

무역회사에 근무하며 일본, 뉴질랜드, 러시아 등을 돌아다녔지만 현지에서도 아마추어 권투시합에 출전하는 등 복싱과 인연이 계속됐다. 귀국 후 동갑내기 장경선씨와 결혼을 하고 컴퓨터회사에 다녔지만 사기를 당해 엄청난 빚을 짊어지게 됐다.

그는 월세방을 전전하다가 월급쟁이 생활에 의욕을 잃고 복싱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서울의 숭민체육관을 찾아갔다. 처음엔 나이어린 복서들을 따라가기가 힘겨울 정도였지만 고생 끝에 2001년 드디어 프로복서가 됐다. 데뷔한 지 3년 만인 지난해 말 5전4승1패의 기록을 갖고 미들급 챔피언 도전계획을 세웠다. 열한살이나 어린 챔피언에게 도전한다고 했을 때 그의 승리를 예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시합 중 오른손을 다치는 부상을 당하고도 투혼을 발휘한 그는 결국 KO승을 거뒀다.

이씨는 “최고령 국내챔피언 기록을 세우기까지는 아내와 아이들의 믿음과 격려가 가장 큰 힘이 됐다”며 “동양챔피언에도 도전, 반드시 타이틀을 획득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권세진 기자 sjkw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