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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1.12 15:35:45 (*.237.24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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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제복이 쓰러져 가는 나를 바로세웠고 빛 바랜 화폭에 새생명을 불어넣었죠. 힘들 때 군복을 입고 있으면 정신이 맑아져요. 그래서 요즘도 꼭 군복을 입고 일하죠. 특히 주말 체험학습 땐 어린이들이 좋아하고 잘 따라요.”
군복 마니아이자 서양화가인 박봉택(朴鳳澤 ·52 ·특전하사관1기 ·예비역 중사 ·사진)화백. 그는 경기도 파주의 자신이 운영하는 `자연미술학교'에서 늘 군복을 입고 산다.
텁수룩한 수염만 깎는다면 군인보다 더 군인답다. 특전사 조교 출신답게 아이들에게 그림 지도를 할 때 조교가 된 기분이란다.
잠시 흐트러진 마음을 잡는 데 군복보다 좋은 게 없다고 군복 예찬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펼친다.
군생활을 잊지 못해 군복을 입기 시작했다는 박화백은 전국 군복 마니아 300여 명을 이끌고 있는 `총수'다. 땀내 나는 군복의 옛 추억을 되살리려는 회장답게 내년 청사진도 살짝 귀띔한다.
이제까지 회원들이 꿈꿔왔던 군복 패션쇼를 열어 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 중이다.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서울 이태원의 군복 판매업자·회원들에게 홍보하는 데 적잖은 시간을 투자한다.
“전역 후 정신적·물질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군생활을 생각하며 이겨냈어요. 전우애로 인간 한계를 극복한 천리행군이 내 인생의 보약이 됐죠. 군인정신으로 하면 안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군복을 입고 생활하면서 삶에 자신감이 생겼어요.”
군대에서 갈고 닦은 체력과 정신력을 바탕으로 1만2000여 평의 자연미술학교를 운영하는 데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는다. 보이스카우트나 학년별 현장학습장으로 활용되는 이 학교는 월 평균 1200여 명의 어린이가 즐겨 찾는 복합 문화공간이다. 또 인근 육군전진·백마부대 군인가족들이 즐겨 찾아 텁수룩한 수염에 군복 입은 화가 선생님이 더없이 잘 어울린다.
“특전사를 나온 게 자랑스럽다”는 박화백. 그가 소장하고 있는 군복의 종류는 다양하다. 한국 특전사와 미국·일본·태국·독일·중국·영국·대만 등 12벌의 군복을 애지중지하고 있다. 또 그린·레드·블랙 등 갖가지 색깔의 베레모도 8개나 간직하고 있다.
현재 한국미술전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화백은 군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미술학도가 전시회 한 번 열기도 힘든데 군생활 중 부대장의 배려로 흑룡부대 장교회관에서 4회, 부평문화회관·인천문화원에서 작품전을 갖기도 했다. 지난 5월에는 서울 용산동 미8군 주한미군·가족, 그리고 카투사를 대상으로 전통 도자기 체험행사를 가졌다.
이처럼 군에 대한 정이 남다른 그는 부대에서 언제든지 불러만 주면 달려갈 준비가 돼 있다. 옷깃을 파고드는 쌀쌀한 초겨울 날씨에도 단정하게 군복을 차려 입고 베레모를 쓰고 생활하는 그의 모습이 아름답기만 하다.
〈글 · 사진=김용호 기자 yhkim@dapis.go.kr / 국방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