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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특수부대〈10〉- 파키스탄 특수임무단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테러세력을 응징하려는 미국의 대테러전쟁이 공격 개시 2달째로 접어들면서 종국으로 치닫고 있다.
세계인의 관심은 탈레반의 붕괴와 오사마 빈 라덴의 체포여부에 쏠려 있지만, 지상작전을 수행한 미국과 영국 등의 특수부대에 대한 활동상 역시 궁금증을 더해가고 있다.

그러나 특수작전 내용은 잘 알려지지 않는 것이 일반적.
어느 부대가 어떤 규모로 투입돼 어디서 활동하고 있는지는 아직까지 베일 속에 있다.
다만 아프가니스탄이 갖는 환경적 특성상 아프가니스탄과 인접한 국가의 특수부대 일부와 함께 작전을 수행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라면 파키스탄 특수부대가 유력하다.

파키스탄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직후인 1947년, 인도와 2달간에 걸쳐 첫 분쟁을 겪은 이래 현재 카슈미르 지역에서의 분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전면전과 국지전을 치러온 국가.
대표적인 특수부대로는 육군 특수임무단(SSG)과 해군 특수임무단(SSGN)을 들 수 있다.
이들 두 부대는 대원들로 하여금 미군의 특수작전 교육훈련과정을 이수케 함은 물론 미 해군의 SEAL팀, 영국의 SAS를 비롯해 터키, 이란, 요르단의 특수부대와도 합동 훈련을 실시하면서 전투역량을 키워 왔다.

SSG는 50년대 중반에 육군의 도움을 받아 발루치연대 내에 제19대대를 창설한 데서 비롯되었다.
대대는 최초 현재의 방글라데시 지역에서 인도군과 대응하는 부대로서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1964년 파키스탄으로 파견온 미 육군의 제10공수특전단 기동훈련대(MTT)의 지원에 힘입어 파키스탄 공수학교가 창설되면서 19대대원들은 공수강하훈련과 기본적인 특수전훈련을 받았다.
이때 약 700명의 19대대원들은 그들 스스로 특수부대임을 자부했으며 점차 사막전, 산악전, 수중전에 필요한 훈련을 계속했다.

 1966년이 되자 파키스탄 군 지휘부는 19대대와 같은 성격의 부대를 확대키로 하면서 공식적으로 3개 대대로 구성된 특임단 SSG를 창설했다.
SSG는 1970년에 이르러 `무사'(Musa)라는 이름의 독립적인 전투다이버중대를 창설, 내륙의 수로 부근에서 비정규전적인 임무를 수행했다.
80년대에 들어서서는 각 대대에 전투다이버분견대를 신설하게 됐으며, 동시에 무사는 대테러작전을 전담하는 중대로 전환되었다.
이때 영국의 SAS가 훈련을 지원했다.
현재 중령이 지휘하는 각 대대는 4개 중대 700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중대는 소대, 나아가 10명 단위의 팀으로 나뉜다.
특히 주 타격 중대는 `자라 자리'중대라고 불리는데, `찾아라 그리고 폭파하라'는 뜻이다.

대원들은 정식 대원이 되기까지 1년여의 훈련과정을 거친다. 훈련코스를 통과하는 것은 당연히 쉽지 않다. 강습·저격·생존·폭파·레펠링·공수·은밀침투 및 첩보수집·해병코스·심리전 등의 코스가 복합되어 있다.
SSG는 아프가니스탄의 구소련과의 전쟁에서 일부 은밀한 작전을 수행하면서 VIP경호작전을 수행하기도 했다.
보통 3개 대대는 핵시설 및 댐 등 국가 중요시설, 그리고 카슈미르분쟁지역 등을 번갈아 가며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테러작전에 있어서는 1985년 팬암기 납치사건 때 투입돼 테러리스트를 사살했으나 작전 중 10여명의 무고한 인명피해가 남으로써 성공작으로 평가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절치부심한 끝에 9년 후인 1994년, 이슬라마바드에서의 인질사건에 투입돼 작전 개시 2분 만에, 그야말로 전광석화같이 테러리스트를 사살하고 인질들을 모두 안전하게 구출함으로써 그 역량을 높이 평가받았다.
한편 해군의 SSGN은 미 해군 SEAL의 지원 아래 창설됐다.
현재 항구도시 카라치에 지휘부가 있다. 해상과 공중으로 적진에 침투, 첩보수집 및 직접타격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국방일보 12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