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25
2001.11.27 10:33:55 (*.168.82.2)
1050
단결!
운영진 최경수 입니다
국내 첫 열기구 설계·제작자 허민식
경향신문 11/19일자
톡톡튀는 톡톡맨 허민식(34). 자타가 공인하는 열기구 매니아다. 삼성에버랜드 환경개발사업부 공무팀 주임으로 근무하는 그는 주말이면 자신이 만든 열기구를 타고 아름다운 지상을 내려다보며 하늘을 나는 재미에 푹 빠진다.
하늘에서 자신의 체력과 정신력, 그리고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의 도전 정신을 온몸으로 느끼는 맹렬 직장인이다.
그의 이름앞에는 열손가락으로도 다 못꼽을 정도로 많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국내 최초 열기구 설계 및 제작자, 국제 스노보드 심판 경력, 특전사 출신 점프·스노보드 베테랑등 아주 특이한 이력을 가진 만능 엔터테인먼트 스포츠맨.
취미는 열기구 비행, 열기구 책 모으기, 열기구 우표 모으기, 열기구 엽서 모으기. 한때는 스키와 스노우보드를 열심히 탔지만 지금은 직장생활하면서 남는 시간 대부분을 열기구에만 전념하고 있다.
열기구에 빠지게 된 동기는 특전사 공수교육대에서 공수교육을 받고 비행기 점프를 하게 되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패라글라이딩을 하다가 94년부터 열기구로 전환하였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다가 한번은 죽을 뻔했다. 그때 악몽을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는데 갑자기 글러이더가 발밑으로 뚝 떨어졌다.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공중에서 충격을 받았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위기일발 사고가 난 것이다. 순간 유일한 생명줄인 낙하산을 펴려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펴지지 않았다.
낙하산을 펴기위해 사투를 벌이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중심을 잃고 곤두박질쳐서 내려오는 자신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위기일발 속에서도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며 소리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것을 가져와라, 빨리 119에 신고해서 구급차를 불러라" 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는 순간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낙하산을 펴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치는 데 눈앞에 큰 나무가 확 들어왔다. 순간 두 팔로 나무를 와락 껴안았다. 무서운 속도로 지상으로 충돌하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그렇게 위기를 모면하고는 정신을 잃었다.
얼마만에 희미하게 정신이 들었을 땐 몰려든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리고 자신은 들것에 실려 있었다. 차마 눈을 뜰수가 없었다. 혹시 온몸이 부서지고 팔다리가 떨어져 나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 나서 자신의 몸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눈을 꼭 감고 발가락을 살살 움직여보니 움직여지는 것이 아닌가. 그 다음에 손가락을 움직여보니 역시 움직였다. 다음에 한쪽 팔을 들어보니 팔이 붙어있었다. 나머지 팔도, 양쪽 다리도 다 붙어있었다. 그제서야 사지가 떨어져 나가지 않고 무사하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때의 아찔했던 사고를 계기로 패러글라이딩을 그만두고 그는 열기구를 하게 되었다.
열기구를 타고 하늘을 날면서 커피 마시고 김밥 먹을 때 황홀한 기분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한국에서 최초로 열기구를 직접 설계하고 제작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그 동안 열기구를 만든 사람은 있었으나 외국열기구를 그대로 자로 재서 만들었다고 한다.
남들이 산과 들로 여행을 갈 때 그는 하늘로 여행을 훌쩍 떠난다. ‘축구공열기구’를 타고 하늘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바람에 실려 두둥실 떠나는 풍선여행이다.
바람을 따라 흘러가기 때문에 단 한 점의 바람도 느낄 수 없다. 단지 뜨거운 공기를 불어 넣기 위한 불길소리만 간헐적으로 들릴 뿐이다.
포항전문대를 거쳐 육군 제3사관학교를 나온 그는 군시절(공수부대 예비역대위) 고공낙하하면서 하늘과 친해졌다. 제대후 열기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국내 뿐 아니라 미국, 일본 열기구협회 회원이 됐다. 지난 98년에는 일본 사가(佐賀)현에서 열린 ‘태평양컵’에도 참가했다.
“일본 군마현에서 고등학교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날 열기구를 처음 탄다면서도 그는 직접 제작한 열기구를 가지고 왔더라구요.”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열기구 제작에 들어갔다. 아무도 만들어본 사람이 없는 축구공 열기구를 그가 만들기까지는 어려움이 많았다.
처음에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아 아이디어를 얻으려고 두달 동안 축구공을 껴안고 살았다. 어떻게 하면 저런 모양처럼 만들 수 있을까 궁리만 하면서 축구공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서 두 달을 지내다 보니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렇게 해서 설계에서 재료구입, 재봉, 도색까지 혼자서 모든 것을 다했다.
1년여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드디어 높이 25m, 직경 15.2m, 자중무게 200㎏의 4인승‘축구공 열기구’가 탄생하게 됐다.
열기구를 만드는데 1천만원이나 들었다. 시작부터 완성까지 북치고 장구치고 혼자 다 했기에 그나마 1천만원이라는 최소의 경비로 가능했다. 만약 그 모양 그대로 외주를 통해 만들었다면 제작비가 적어도 5천만원은 들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만든 축구공 열기구로 99년 5월 27일 경기도 현리에서 처녀비행을 하였다. 열기구의 테스트를 위하여 30분 정도 비행을 하였다. 하늘을 나는 기분은 말그대로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그는 `덩치 큰 새 식구'인 열기구를 위해 중고 12인용 승합차를 구입해 좌석부분을 개조, 싣고 다니면서 주말이면 전국을 돌며 열기구의 성능을 시험하고 돌아오곤 한다.
남북횡단이 소원인 그는 200여개의 열기구관련 사이트를 연결시킨 개인홈페이지(http:/myhome.naver.com/hotair)를 운영하고 있다.
"열기구는 바람과 똑같은 속도로 움직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센 바람속에 열기구가 들어가도 열기구를 타고 있는 사람은 속도감을 전혀 느낄 수 없으며 머리카락도 날리지 않습니다. 바람이 부는 대로 열기구가 흘러가기 때문에 조종사는 고도를 조정하여 방향을 찾아갑니다. 고도마다 바람방향이 틀리니까요. 유능한 조종사는 고도별 바람방향을 재빨리 파악하여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열기구를 조종해 비행을 합니다"
그의 열기구 여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최근에는 아침 안개가 환상적인 부여 백마강의 비경을 내려다보며 공중에서 커피를 마시고 김밥으로 아침식사를 하는 그만의 하늘여행을 만끽하고 돌아왔다.
스노보드 국제심판자격도 있는 만능스포츠맨인 그는 내년에는 열기구에 관한 책도 펴낼 예정이다. 앞으로 중국 고비사막을 횡단할 계획이라는 그는 끝으로 자신을 후원해줄 후원자를 찾고 있다.
"열기구는 돈이 많이 드는 취미입니다. 열기구의 가격이 대당 3,000만원 이상이고, 그렇게 고가를 들여 만든 기구도 400시간밖에 사용을 하지 못합니다. 400시간 이상 사용하면 이륙도 잘 안될 뿐 아니라 섬유의 인장강도가 약해져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연료비 또한 비행 한번 하는데 10만원 정도 소용됩니다. 이동경비까지 포함하면 한번 비행에 20만원 정도가 소요되는 셈입니다. 저 같이 직장 다니며 취미로 열기구 하는 사람은 월급을 몽땅 열기구에 쏟아 부어야 합니다.
외국의 경우 많은 기업들이 스포츠 열기구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만 보더라도 열기구 한대에 초기비용으로 500만엔 정도와 비행에 필요한 경비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대신 기구에다 후원하는 회사의 로고를 새겨 넣어 비행 할 때마다 후원회사의 광고를 해 드립니다. 제 열기구를 후원할 뜻이 있으신 분은 저에게 메일(hotair@naver.com)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도전의식과 모험정신으로 똘똘 뭉친 맹렬 직장인 허민식. 그의 삶이 아름답다
운영진 최경수 입니다
국내 첫 열기구 설계·제작자 허민식
경향신문 11/19일자
톡톡튀는 톡톡맨 허민식(34). 자타가 공인하는 열기구 매니아다. 삼성에버랜드 환경개발사업부 공무팀 주임으로 근무하는 그는 주말이면 자신이 만든 열기구를 타고 아름다운 지상을 내려다보며 하늘을 나는 재미에 푹 빠진다.
하늘에서 자신의 체력과 정신력, 그리고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의 도전 정신을 온몸으로 느끼는 맹렬 직장인이다.
그의 이름앞에는 열손가락으로도 다 못꼽을 정도로 많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국내 최초 열기구 설계 및 제작자, 국제 스노보드 심판 경력, 특전사 출신 점프·스노보드 베테랑등 아주 특이한 이력을 가진 만능 엔터테인먼트 스포츠맨.
취미는 열기구 비행, 열기구 책 모으기, 열기구 우표 모으기, 열기구 엽서 모으기. 한때는 스키와 스노우보드를 열심히 탔지만 지금은 직장생활하면서 남는 시간 대부분을 열기구에만 전념하고 있다.
열기구에 빠지게 된 동기는 특전사 공수교육대에서 공수교육을 받고 비행기 점프를 하게 되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패라글라이딩을 하다가 94년부터 열기구로 전환하였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다가 한번은 죽을 뻔했다. 그때 악몽을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는데 갑자기 글러이더가 발밑으로 뚝 떨어졌다.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공중에서 충격을 받았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위기일발 사고가 난 것이다. 순간 유일한 생명줄인 낙하산을 펴려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펴지지 않았다.
낙하산을 펴기위해 사투를 벌이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중심을 잃고 곤두박질쳐서 내려오는 자신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위기일발 속에서도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며 소리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것을 가져와라, 빨리 119에 신고해서 구급차를 불러라" 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는 순간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낙하산을 펴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치는 데 눈앞에 큰 나무가 확 들어왔다. 순간 두 팔로 나무를 와락 껴안았다. 무서운 속도로 지상으로 충돌하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그렇게 위기를 모면하고는 정신을 잃었다.
얼마만에 희미하게 정신이 들었을 땐 몰려든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리고 자신은 들것에 실려 있었다. 차마 눈을 뜰수가 없었다. 혹시 온몸이 부서지고 팔다리가 떨어져 나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 나서 자신의 몸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눈을 꼭 감고 발가락을 살살 움직여보니 움직여지는 것이 아닌가. 그 다음에 손가락을 움직여보니 역시 움직였다. 다음에 한쪽 팔을 들어보니 팔이 붙어있었다. 나머지 팔도, 양쪽 다리도 다 붙어있었다. 그제서야 사지가 떨어져 나가지 않고 무사하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때의 아찔했던 사고를 계기로 패러글라이딩을 그만두고 그는 열기구를 하게 되었다.
열기구를 타고 하늘을 날면서 커피 마시고 김밥 먹을 때 황홀한 기분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한국에서 최초로 열기구를 직접 설계하고 제작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그 동안 열기구를 만든 사람은 있었으나 외국열기구를 그대로 자로 재서 만들었다고 한다.
남들이 산과 들로 여행을 갈 때 그는 하늘로 여행을 훌쩍 떠난다. ‘축구공열기구’를 타고 하늘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바람에 실려 두둥실 떠나는 풍선여행이다.
바람을 따라 흘러가기 때문에 단 한 점의 바람도 느낄 수 없다. 단지 뜨거운 공기를 불어 넣기 위한 불길소리만 간헐적으로 들릴 뿐이다.
포항전문대를 거쳐 육군 제3사관학교를 나온 그는 군시절(공수부대 예비역대위) 고공낙하하면서 하늘과 친해졌다. 제대후 열기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국내 뿐 아니라 미국, 일본 열기구협회 회원이 됐다. 지난 98년에는 일본 사가(佐賀)현에서 열린 ‘태평양컵’에도 참가했다.
“일본 군마현에서 고등학교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날 열기구를 처음 탄다면서도 그는 직접 제작한 열기구를 가지고 왔더라구요.”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열기구 제작에 들어갔다. 아무도 만들어본 사람이 없는 축구공 열기구를 그가 만들기까지는 어려움이 많았다.
처음에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아 아이디어를 얻으려고 두달 동안 축구공을 껴안고 살았다. 어떻게 하면 저런 모양처럼 만들 수 있을까 궁리만 하면서 축구공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서 두 달을 지내다 보니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렇게 해서 설계에서 재료구입, 재봉, 도색까지 혼자서 모든 것을 다했다.
1년여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드디어 높이 25m, 직경 15.2m, 자중무게 200㎏의 4인승‘축구공 열기구’가 탄생하게 됐다.
열기구를 만드는데 1천만원이나 들었다. 시작부터 완성까지 북치고 장구치고 혼자 다 했기에 그나마 1천만원이라는 최소의 경비로 가능했다. 만약 그 모양 그대로 외주를 통해 만들었다면 제작비가 적어도 5천만원은 들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만든 축구공 열기구로 99년 5월 27일 경기도 현리에서 처녀비행을 하였다. 열기구의 테스트를 위하여 30분 정도 비행을 하였다. 하늘을 나는 기분은 말그대로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그는 `덩치 큰 새 식구'인 열기구를 위해 중고 12인용 승합차를 구입해 좌석부분을 개조, 싣고 다니면서 주말이면 전국을 돌며 열기구의 성능을 시험하고 돌아오곤 한다.
남북횡단이 소원인 그는 200여개의 열기구관련 사이트를 연결시킨 개인홈페이지(http:/myhome.naver.com/hotair)를 운영하고 있다.
"열기구는 바람과 똑같은 속도로 움직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센 바람속에 열기구가 들어가도 열기구를 타고 있는 사람은 속도감을 전혀 느낄 수 없으며 머리카락도 날리지 않습니다. 바람이 부는 대로 열기구가 흘러가기 때문에 조종사는 고도를 조정하여 방향을 찾아갑니다. 고도마다 바람방향이 틀리니까요. 유능한 조종사는 고도별 바람방향을 재빨리 파악하여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열기구를 조종해 비행을 합니다"
그의 열기구 여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최근에는 아침 안개가 환상적인 부여 백마강의 비경을 내려다보며 공중에서 커피를 마시고 김밥으로 아침식사를 하는 그만의 하늘여행을 만끽하고 돌아왔다.
스노보드 국제심판자격도 있는 만능스포츠맨인 그는 내년에는 열기구에 관한 책도 펴낼 예정이다. 앞으로 중국 고비사막을 횡단할 계획이라는 그는 끝으로 자신을 후원해줄 후원자를 찾고 있다.
"열기구는 돈이 많이 드는 취미입니다. 열기구의 가격이 대당 3,000만원 이상이고, 그렇게 고가를 들여 만든 기구도 400시간밖에 사용을 하지 못합니다. 400시간 이상 사용하면 이륙도 잘 안될 뿐 아니라 섬유의 인장강도가 약해져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연료비 또한 비행 한번 하는데 10만원 정도 소용됩니다. 이동경비까지 포함하면 한번 비행에 20만원 정도가 소요되는 셈입니다. 저 같이 직장 다니며 취미로 열기구 하는 사람은 월급을 몽땅 열기구에 쏟아 부어야 합니다.
외국의 경우 많은 기업들이 스포츠 열기구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만 보더라도 열기구 한대에 초기비용으로 500만엔 정도와 비행에 필요한 경비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대신 기구에다 후원하는 회사의 로고를 새겨 넣어 비행 할 때마다 후원회사의 광고를 해 드립니다. 제 열기구를 후원할 뜻이 있으신 분은 저에게 메일(hotair@naver.com)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도전의식과 모험정신으로 똘똘 뭉친 맹렬 직장인 허민식. 그의 삶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