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결!
운영진 최경수 입니다
군생활이 나에게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가 잠시 회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군대 가이드 북] 軍隊를 軍大처럼 - 월간조선9월호 잡지 부록 (http://monthly.chosun.com/html/200111/s1.html)

月刊朝鮮 인터넷 여론 조사-軍 생활이 당신의 人生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
한 달 간 1만8082명 투표 참여-55%인 9963명이 『내 人生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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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의 40분의 1 투자로 「미니 人生」 경험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무척이나 내성적이었다. 떨려서 남들 앞에서 책을 자신있게 읽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군대 가서 軍歌 부르고, 훈련하 면서 나 자신의 껍데기를 하나 벗었다. 그러자, 내 안에서 적극성이란 요소 를 찾아낼 수 있었다」(月刊朝鮮 홈페이지 조석근씨의 글)

「이병부터 병장까지의 기간은 인생 나이로 치면 한 살부터 일흔 살까지를 축소한 것 같다.
人生의 40분의 1(80세를 산다고 가정할 때 軍생활 2년)을 투자하고 「미니 인생」을 경험한 짜릿한 행복감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
병장 시절, 저녁 짬밥을 고추장에 비벼서 먹고 막사 한 모퉁이에 핀 잡초 들 사이에서 네 잎 클로버를 찾으며 제대 후의 인생을 설계하던 때가 그립 다」(ID 「신선마루」)

대한민국 남자 대부분은 軍 생활이 자신의 인생에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사실은 月刊朝鮮이 지난 8월23일 부터 9월23일까지 한 달 간 月刊朝鮮 인터넷 홈페이지(http://monthly.cho sun.com)를 통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밝혀졌다.
月刊朝鮮의 이번 여론조사는 軍에 다녀온 사람들은 과연 軍을 어떻게 생각 할까라는 「체험적 軍隊觀」을 묻는 여론조사였다.
여론조사 設問은 「대부 분의 대한민국 남성들은 젊은 시절 2~3년 동안 병역의 의무를 이행해야 합 니다.
군대 생활은 귀하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습니까?」로 하고, 답변 항목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어느 쪽으 로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등 세 가지로 나눴다.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답변을 한 네티즌들에 대해서는 그 이유를 남기도록 해 약 300여 통에 달하는 글이 게시판에 올랐다.

총 1만8082명이 응답한 이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55%인 9963명이 「긍정 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했고,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답한 응답자 는 5904명(32%)이었다. 「어느 쪽으로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답한 사 람은 10%(1957명)에 불과했다.


50℃가 넘는 탱크 안에서 國家觀 생겨
최근 박노항 원사 병역비리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여전히 병역을 기피하려 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신체검사 병역면제자로 再檢을 받고 현역병으로 입영하거나, 軍 생활을 체험하기 위해 영주권을 포기하고 軍 입대하는 젊 은이들이 늘어나는 등 네티즌들은 軍을 젊음을 消費(소비)하는 장소가 아니 라 유형·무형의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生産的인 장소」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졸 학력으로 가지 않아도 될 군대를 갔다.
기상 나팔소리와 함께 일제 히 기상해 재빠른 동작으로 하루일과를 시작하는 대한민국의 가장 패기차고 싱싱한 60만 대군의 일원이 됐다는 데 뿌듯함을 느꼈다.
그 시각 내 머리 가 얼마나 투명하고 맑았는지 생각해 보라」 (박화훈)
「논산훈련소에서 신체검사를 받았을 때 몸무게가 46㎏이었다. 당시 신체검 사를 담당하던 군의관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합격판정을 내렸다(당시 45㎏ 이하가 軍 면제).
논산훈련소에서 6주간의 기본교육을 마치고, 수도기계화 사단에 전입갈 때쯤에는 몸무게가 56㎏으로 불어나 있었다.
1㎞도 못 뛰던 내가 10㎞의 구보도 가볍게 뛸 수 있는 체력으로 변해 있었다.

입대 전, 환상적인 통일주의에 빠져 反共의식이 흐려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서, 50℃가 넘는 한여름 탱크 안 鐵甲(철갑) 속에서 나라를 지킨다는 생각 하나로 훈련을 받다 보면 흐트러진 국가관과 反共의 식이 살아나곤 했다.
군대는 환상적인 통일주의에 빠진 젊은이들은 꼭 한 번 다녀와야 할 곳이라고 생각한다」(변철선) 응답자 중에는 軍이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게 하는 人性 교육기관, 리더십, 단체의식 등을 배우고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고 독립심을 기를 수 있는 곳 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20代의 젊은 나이에 군대는 미리 사회를 경험할 수 있는 사회의 축소판이 다.
궂은 일부터 시작해 자신이 판단해서 일을 처리해야 하는 경영자적인 마인드까지 가져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는 보통 군대를 경험한 후 부모로 부터 독립한다. 힘든 생활을 경험함으로써 인생의 방향을 마련하게 되고, 再정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노상조) 「軍은 인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교육기관이다. 몸이 좋지 않았던 나는 최 초 군대에 입영을 하였다가 귀향 조치 후 다시 1년 이상의 대기 시간을 보 낸 후 再입대를 하였다.

입영하여 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아 수송부에서 근무를 하였는데, 그 곳에서 이병, 일병, 상병, 병장이라는 계급의 구조 속에서 느끼는 서열감 , 나이는 어리지만 고참들의 지도 방법 등 여러 가지 단체 의식을 배웠다.

軍은 우리가 강하게 돼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모르게 가르쳐 주는 큰 교 육기관이다」(김일섭)

「軍 가산점 제도 폐지」가 불만

이번 月刊朝鮮 여론조사에서는 32%에 달하는 응답자가 軍 복무가 사회생활 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부정적인 의견을 남긴 네티즌들도 글 첫 머리에 「軍 생활은 인내심을 기르고, 사회에서 경험할 수 없는 많은 것을 배우지만…」 「나름대로 알차고 보람된 시간이었지만 …」이라는 전제를 달아 軍 생활이 긍정적 측면이 있다는 점만은 인정했다 .

이들이 軍 생활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선임병과의 부당한 상하관계, 지역감정, 軍가산점 폐지 문제, 병역비리 등인 것으로 나타났다 .

「나이나 사회적인 경력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군번順으로 먼저 들어온 사람이 늦게 들어온 사람을 통제하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가 령 학력이나 사회적 위치가 낮은 쪽이 고참이 되었을 때, 그 반대쪽의 하급 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나쁜 경험이 사회복귀 이 후에도 잊고 싶은 경험으로 남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pjs) 「지역감정이 문제다.
특정 지방 사람이 왕고참(최고 선임병)이 되면 지역 을 구분해 후임병을 차별 대우하는 경우를 봤다. 보통 한국 남자들은 군대 서 처음으로 지역감정 또는 地方色이라는 것을 알았다」(방어진 꽃바위) 「현직 교사인 나는 軍 복무기간 동안 승진 호봉 등에 지장이 있었다.
물론 정년 때도 동기생인 여자나 未畢(미필)한 남자에 비해 손해를 볼 것이다」 (권기장) 「누구나 동등하게 3년 동안 국방 의무를 위하여 나라에 봉사하도록 되어 있다면 문제가 없으나 많은 사회 지도층들이 편법으로 병역의무를 회피하였 다는 사실을 접할 때마다 지난 3년 세월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린다」(K. S.IM)

「고통을 견디는 힘이나 동료애 등 긍정적인 요소도 많이 체득하지만 군대 생활 3년 동안 대부분의 남성들이 담배를 배우고, 힘이 곧 정의라는 부당한 非민주성을 배운다」(아쉬운이)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軍은 많은 것을 가르쳐 주는 「人 生의 大學」이라고 네티즌들은 입을 모았다.

졸병시절 10·26 사태, 12·12 사태, 광주 사태 등을 겪었다는 아이디 「K im, Young J」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겨울이면 팬티까지 벗고 눈 위에서 훈련받아가며 軍 생활을 보내면서 철조망 너머 저 멀리 民間人이 가는 모 습을 보면서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휴가 나와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했고, 歸隊(귀대) 후 어머니가 해주신 떡을 몰래 화장실 뒤에서 눈물 흘리 며 먹던 기억도 있다』고 회상하면서 『순진하기만 했던 내가 현실을 볼 수 있는 시각과, 현실적응 능력과 인내가 훈련되었던 돈 주고도 살 수 없던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부모·형제 등 가족의 중요성 알게 돼
그는 『미국 이민 갈 때 비행기 표 값도 빌려서 유학을 갔다. 지금은 미국 에서 2남 2녀의 가장으로서 생활하고 있는 것은 軍 시절의 연단과 훈련 도 움이 컸다. 미국서 석사 3개와 박사과정을 마치기까지는 軍 생활의 底力(저 력)이 여지 없이 발휘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나는 軍이 人生大學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네티즌 이지규씨는 가족의 의미를 새롭게 깨달았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부모 형제 집의 중요성을 깨우치기엔 軍 이상 좋은 곳이 없다. 1980년 1 2월에 해병대를 입대한 나는 그전 부모님 속을 무던히도 썩이면서 살았다.
그러나 軍에 입대하는 순간부터 변화가 생겼다. 부모 형제들이 너무나 보 고 싶고 내가 잘못한 것이 한없이 후회스러웠다.
그후로는 내 인생관이 바뀌었다. 軍 3년여의 기간이 내 인생에 있어서 너무 나 소중한 한 획을 그은 기간이라 생각하고 사회에서 어려운 일이 생겨도 그때를 떠올리며 극복하곤 한다」 軍에서 자격증 취득을 통해 사회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고 밝힌 글도 눈 에 띈다.

「나는 1989년에 특전사에 입대하여 1994년 4월에 제대하였다.
軍 복무하면 서 국가기술자격증인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하였고, 軍에서 스쿠버 교육 도 받았다. 제대 후 스쿠버 자격증을 취득한 후 시험을 쳐 현재는 해양경찰 로 근무하고 있다.
軍에서 스쿠버 교육을 받지 못했으면 나는 해양경찰시험 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형사 가제트) 「해군 해병 학사장교로 만 5년 간 근무한 경험이 있다.
전역 후 고교 교사 와 태권도 관련 업무에서 비교적 빼어나다는 업무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 던 것은 해군복무가 가져다 준 작은 「전리품」 중 하나라고 본다. 그 정신 그대로 지금 중국 태권도 대표팀 감독을 거쳐 上海市 선수단을 지도하고 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중국에 태권도를 심어가는 원동력과 지탱력은 바 로 대한민국 海軍이 심어 준 그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이다」(박종한) 인터넷 아이디를 「정아만세」라고 올린 한 네티즌은 『軍隊는 개인의 이해 를 넘어서 국가에 봉사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면서 『군대에 는 빈부나 학력, 출신지역을 넘어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을 확실히 머릿속에 새겨넣어 준다』고 말했다.

그는 행군할 때 잠시 쉬던 國道邊(국도변)의 코스모스가 아름답다는 것도 軍 생활을 통해 알게 됐다고 적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