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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특수부대(6)-그린베레의 美육군 특전부대



<국방일보 10월20일자>
올해 초 미 육군이 일반 장병에 대해서도 `블랙베레'를 쓸 수 있도록 하자 미국 레인저 예비역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반대시위를 벌였다. 미군 내에서 검은색 베레는 레인저의 군모(軍帽). 레인저들은 그들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는 블랙베레를 레인저만의 상징으로 남게 해달라고 소리 높여 외쳤지만, 결국 블랙베레는 미 육군 전체 일반 장병들의 군모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베레는 모자 자체로만 볼 때 혹독한 훈련을 거치고 난 뒤 그 부대의 고유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을 갖췄다는 의미에서 대원들에게 부여된다. 그것은 곧 그 부대를 인식케 하는 하나의 상징이 되고, 나아가 각 특수부대와 그 특수작전을 수행하는 대원들과 동일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블랙베레와 함께 또 하나의 유명한 베레인 그린베레(Green Berets)는 미 육군특전부대(Army Special Forces)와 그 대원들을 상징한다. 그린베레로써 먼저 유명세를 날린 부대가 비록 영국 해병대(코만도)일지라도, 오늘날 그린베레는 바로 미 육군특전부대와 동의어로 인식되고 또 그렇게 쓰이고 있다.

특전부대는 제75 레인저연대, 제160 특전항공연대 등과 함께 미 육군특수작전사령부(Special Operation Command)를 구성하는 특수부대 가운데 하나. 미군 전체로 볼 때 특수부대의 역사적 뿌리는 레인저의 그것과 동일하지만 부대 임무의 성격면에서 특전부대는 베레의 색깔만큼 레인저와 크게 구분된다.

레인저가 주로 정규전 부대에 배속돼 경보병으로서 단기적인 직접타격 임무를 수행해왔다면, 특전부대는 철저히 비정규전적인 성격과 임무를 지니고 있다. 비정규전이란 게릴라전을 비롯해 적 정부체제 전복, 사보타지, 첩보활동, 침투 및 퇴출, 적 정부 내에서의 비밀활동 등의 임무를 포괄한다. 우리의 특수전사령부와 성격이 유사하다.

이들의 창설을 돌아보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 트루먼 대통령은 대전 중 윌리엄 도노반에 의해 창설, 적국에서 기간에 관계없이 비정규전적인 게릴라 활동을 펼치며 많은 전과를 거둔 `그림자 전사'인 전략사무국(OSS)을 해체시키고 중앙정보국(CIA)을 창설했다. 그러나 미 육군에서는 여전히, 그리고 6·25전쟁에 참전하면서 OSS적인 부대를 더욱 필요로 했다.

1952년 미 육군은 특전부대를 창설하고자 했다. 창설의 주역은 OSS 출신의 아론 뱅크 대령과 러셀 보크만 대령. 그들은 비정규전적인 게릴라 형태의 부대를 미 육군에 적용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뱅크 대령은 창설을 위해 부대원을 모집하는 데 있어 신병들을 원하지 않았다. 2개국어 이상 구사능력과 계급은 하사관 이상, 기본적으로 공수낙하 능력 등 뛰어난 체력과 전투기술, 경력은 물론 지식, 사명감을 요구했다. 까다로운 조건은 그들이 수행해야 할 임무가 `매우 특별한' 것임을 쉽게 알게 해준다.

때문에 1962년 6월19일 포트 브래그에서 최초의 특전부대인 제10 특전단(SF Group)이 창설됐을 때 부대원이라고는 지휘관인 뱅크 대령을 포함해 준사관 1명, 병 8명 등 모두 10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특전단에는 수백명의 지원자들이 몰려들었으며, 육·해·공 어디를 통해서든 적 종심 깊이 침투, 기간에 관계없이 게릴라전을 수행할 수 있는 대원들이 충분히 확보됐다.

철저히 부대임무와 수행능력에 맞춘 부대원 선발과 교육훈련은 그들 스스로 미 육군의 엘리트 중 엘리트라는 자부심을 갖게 했고 육군 당국 또한 충분한 만족감을 표시했다.
제10 특전단은 1953년 첨예한 냉전의 현장 서독으로 파병되었으며, 일부가 남아 곧이어 창설된 제77 특전단(1960년 창설된 7특전단의 전신)의 근간이 되었다. 오키나와에 위치, 극동지역에서의 작전을 담당하는 제1 특전단은 1957년 창설됐다.

이 즈음인 1958년 대위를 지휘관으로 하는 12명의 `A(알파)-팀' 또는 `A-분견대'가 기본 임무수행 단위부대로 정립돼 `소수정예'를 과시했다.
그러나 특전대원들의 긍지와 자부심을 한층 드높인 장본인은 1961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40대의 젊은 존 F 케네디였다. 케네디는 세계적으로 게릴라의 활동이 빈발했던 당시 그 게릴라를 제압할 방법을 군이라는 조직에서 찾았고 그중 특전부대가 이상적인 수단임을 깨달았다.

케네디는 특전부대의 확대를 지시했다. 이에 따라 1961년 9월부터 제5, 제8, 제6, 제3 특전단이 잇따라 모습을 보였다.
케네디의 이같은 특전단 확대 지시는 특전단에 대한 신뢰의 한 단면이지만, 훗날 이들의 교육기관인 특수전센터·학교 이름에 케네디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특전대원들의 내면을 파고드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거기에는 케네디의 `그린베레'가 있었던 것이다.






1961년 1월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존 F 케네디는 젊고 패기 있으며, 때로는 낭만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는 포트 브래그를 방문, 제18공정군단 예하 제82공정사단 등을 사열하고는 했다. 하지만 그가 더욱 좋아했던 것은 `특전부대(Army Special Forces)'였다.

케네디는 특전부대 증설 및 창설을 지시한 후 그 해 10월12일 이 일로 분주한 포트 브래그를 찾았다. 그는 특수전센터 지휘관 야보로 준장이 쓰고 있는 그린베레를 보고 “장군, 멋지군요. 그 베레를 좋아합니까?”라고 말을 건넸다. 야보로 준장은 “예, 각하. 저와 대원들은 오랫동안 원해왔습니다”라고 대답하면서도 한편으로 머뭇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야보로 장군은 상급 지휘관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그날도 그에게 빗발칠 따가운 시선을 잘 알면서도 그의 특전대원들을 위해 대통령 앞에서 그린베레를 썼다. 그린베레는 공식적인 군모가 아닌 탓에 포트 브래그의 사령관은 `누구든 걸리면 영창'이라는 엄포와 함께 그린베레 착용을 금지하고 있었다.

야보로 장군은 훗날 “최고의 엘리트 대원, 최고의 엘리트 부대에 부응하는 의미심장한 심벌이 필요했다”고 회고했듯, 비공식적으로나마 오랫동안 특전대원들이 애용해온 그린베레를 통수권자인 대통령으로부터 인정받아 부대의 자존심과 대원들의 사기를 높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미 육군에서 누가 그린베레의 원조인가는 확실치가 않다. 야보로 장군을 비롯한 1950년대의 특전대원 일부가 관련 기록을 남기거나 전설 같은 이야기를 구전시켜왔지만 누가 처음으로 그린베레를 썼는가, 또는 누가 최초로 아이디어를 냈는가에 대해서는 일치하지 않고 있다.

다만 미국에서 그린베레가 처음 등장한 시기를 1953년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시 제10특전단에 소속된 OSS 출신의 허버트 브루커 소령이 주인공이었다. 부르커 소령이 독일로 파견을 나가자 그를 유심히 봐오던 제77특전단의 로즈 피젤 중위가 그린베레를 구해 그의 팀원들과 함께 훈련장이든 어디서든 그린베레를 쓰고 다녔다. 이후 특전대원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져 포트 브래그의 `스모크 밤' 언덕은 그린베레로 가득찼다.

그들의 내면에는 다른 부대와 구별되고자 하는 무엇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지만, 이같은 특전대원들의 태도와 미 육군 공식복제와 어긋난 그린베레는 널리 인정받을 수 없었다.

케네디는 포트 브래그 내에서 그린베레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을 감지할 수 있었다. 백악관으로 돌아온 그는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특전대원에게는 남다른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야보로 장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장군과 장군의 대원들은 국민과 자유세계를 위해 가치 있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임무를 수행할 것입니다. 나는 그린베레가 다가올 고난의 시기에 남들과 구별되는 영예의 표상이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이로써 그린베레는 공식적으로 특전부대를 위한 군모가 될 수 있었다.

케네디는 이듬해 4월11일 펜타곤에 `자유를 위한 전투에서 그린베레는 탁월함의 상징, 용기의 증표, 영예의 표상'이라는 내용이 포함된 전문을 보냈다. 지금도 그린베레를 표현할 때 그대로 인용되고는 하는 이 문구는 케네디의 특전부대와 그 대원들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 바로 그것의 재확인이었다.

베트남전은 그린베레 특전대원들의 무대가 되었다. 장기간 세계 어느 곳에 투입돼더라도 외부의 지원 없이 임무를 완수하고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그들은 주요시설 타격을 비롯해 민사심리전, 전투교육훈련 지원, 심지어 교량건설, 의료지원까지 수많은 특수임무를 수행했다. “미국 군대가 쌓는 업적의 상징이 될 것”이라는 케네디의 말을 현실화하듯 수많은 영웅과 신화를 만들어냈다.

이후로 특전부대의 작전지역은 더욱 넓어졌다. 중남미의 군부독재정권을 돕는 암살, 납치, 사보타지 교육 등도 있어 지탄을 받기도 했지만, 1980년대 도미니카 내란 예방 등 과테말라, 콜롬비아 등지에서의 작전은 특히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미 육군은 제10특전단을 비롯한 제1, 제3, 제5, 제7 등 5개 특전단(제19, 제20특전단은 주방위군)을 중심으로 육군특전부대사령부를 구성하고 있다.
이중 워싱턴주 포트 루이스의 제1특전단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권을 작전지역으로 하고 있고, 킬로분견대(SFD - K)는 우리나라 캠프 킴에 위치한 주한 미군 특수작전사령부(SOCKOR)의 작전통제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