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25
2001.10.24 13:03:00 (*.237.144.70)
2104
우리나라는 이런부대왜 아직없지 지금이라도 만들면 나가 지원하지 산타는거 하나는 자신있는데 미국이나 캐나다는 매년 레인져 대회나가는걸로 알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나가면 우승은 따놓건데 미국특수부대 영국 레인져부대 우리나라한테는 게임도 안된다. 왜냐고 일당 천으로 싸울수있으니깐
화이팅!!!!!!!!
>단결!
>운영진 최경수 입니다
>미특수부대- 육군 레인져부대 소개글 입니다
>
>
>
>세계의 특수부대<4〉- 美육군 제75 레인저연대
>(국방일보 10/18일자)
>
><img src="http://kookbang.dapis.go.kr/news/20011018/18-3-1.jpg">
>
>“레인저, 선봉으로 나서라(Rangers, lead the way).” 사단의 상륙을 지켜보던 노먼 코타 장군은 제5 레인저대대장을 불러 짤막하게 지시했다.
>
>1944년 6월 6일. 아이젠하워 장군 휘하의 연합군이 프랑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감행할 때. 셀부르항이 있는 유타 해안에서는 미 제82, 제101공정사단의 공수작전에 힘입어 손쉽게 교두보를 확보했지만 그 옆 오마하 해안에서는 29사단이 악전고투를 하고 있었다.
>
>독일군이 로멜장군의 제안에 따라 구축한 대서양방벽, 특히 빗발치듯 쏘아대는 해안포는 미군의 상륙정을 수장시켰다.
>상륙한 병사들도 사기가 떨어져 돌격을 주저했다.
>사단장 브래들리 장군은 증원군을 다른 방면으로 돌릴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었다.
>그때 부사단장 노먼 코타 준장은 레인저대대장을 불러 돌파구를 열 것을 지시했다.
>`죽음을 무릅쓴 용맹한 돌진' 외에는 별다른 묘책이 없는 상황.
>레인저는 독일군의 기관총 세례를 뚫고 전진, 철조망 장애물과 해안진지를 파괴하면서 끝내 돌파에 성공했다.
>이곳에서 연합군 사상자는 3000여명에 달했다.
>
>미국 특수부대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미 육군특수작전사령부 예하 제75 레인저연대는 1756년 로버트 로저스 소령에 의해 창설됐다.
>그러나 미국 독립 이전인 1675년 `필립왕의 전쟁'으로 불리는 인디언과의 분쟁을 종결로 이끈 벤저민 처치의 레인저를 그 효시로 보는 경우가 많다.
>
>레인저가 본격적인 모습을 보인 것은 역시 2차대전 때.
>1942년 5월 당시 영국 총참모본부에 파견된 루시언 트러스콧 준장이 “독일군의 배후에서 기습상륙작전을 전개하던 영국군 코만도와 비슷한 특수부대를 창설하자”고 건의하자 조지 마샬 장군이 이를 즉각 승인함으로써 제1 레인저대대가 창설됐다.
>
>첫 전투는 대대 병력 가운데 49명이 1942년 영국-캐나다 특공대에 참여, 감행한 프랑스의 디페 기습작전이었으며, 이후 북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연합군의 반격작전에서 레인저 대원들은 알제리아의 아르주항구 점령작전에 앞서 작전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해안포대를 성공적으로 파괴했다.
>또 1943년 3월31일에는 조지 패튼 장군의 선봉으로 엘 궤타르 고지를 점령하기도 했다.
>
>2차대전 후 미 육군은 레인저 대대를 해체하면서 레인저교육과정만 남겨놓았다.
>그러나 6·25전쟁이 그들의 부활을 가져왔다.
>1950년 10월, 본부중대를 포함한 5개의 레인저중대로 재출범했다.
>그들은 1950년 12월 한국으로 와 미군 각 사단에 중대 단위로 배속돼 정찰·기습·매복·전술목표타격 같은 임무를 수행했다.
>특히 24사단에 배속된 제8 레인저중대의 한 소대는 2개 중대 규모의 중공군 수색대와 조우, 70여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두기도 했다.
>
>휴전은 또다시 레인저의 해체를 불러왔지만 베트남전은 레인저를 필요로 했다.
>미군은 1969년부터 72년까지 모두 13개 레인저중대를 보병·기갑·공정사단에 배속시켜 운용했다.
>그러나 에이브람스 장군은 육군참모총장으로 취임하면서 각 사단에 산재된 레인저중대를 통합해 제75 레인저연대라는 단일지휘체계로 발족시킬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1974년 제1, 2 레인저대대가 잇따라 모습을 보였다.
>
>1983년 그레나다 작전에서 레인저는 미국민들에게 그들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당시 레인저대대는 그레나다 남쪽에 위치한 살리나스공항을 500피트라는 저고도 낙하를 통해 기습했다.
>충분한 사전정보와 시간적 여유가 부족한 데도 불구하고 현지 유학중이던 미 의대생들을 구출하는 등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감했다.
>
>현재 제75 레인저연대는 2000여명의 병력으로 3개 대대와 지원부서를 구성하고 있으며, `기동타격대'적인 역할을 맡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통신·지휘시설 같은 특정 목표물을 기습, 직접 타격하는 임무를 주로 수행한다.
>
>이를 위해 각 대대는 순번제로 전세계 어느 분쟁지역이라도 18시간 이내 파견될 수 있는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으며 이때 해당 대대 지휘통제팀과 1개 중대는 9시간 내 출동 가능하다.
>특히 2대대는 한국 등 극동지역에서 분쟁시 가장 먼저 투입될 선봉부대다.
>레인저는 일반적으로 중대 단위로 투입되며 이점에서 12명이 한 팀을 이루는 특전부대(Special Forces ·그린베레)와 다르다.
>
>에이브럼스 장군으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경(輕·공수 가능한)보병'이라는 평가를 받은 레인저.
>노먼 코타 장군의 `선봉에 나서라'를 모토로 삼고 있는 그들은 오랜 역사와 전통, 명예 그리고 혹독한 훈련을 바탕으로 한 전투력으로 오늘도 미군의 선봉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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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팅!!!!!!!!
>단결!
>운영진 최경수 입니다
>미특수부대- 육군 레인져부대 소개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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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특수부대<4〉- 美육군 제75 레인저연대
>(국방일보 10/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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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 src="http://kookbang.dapis.go.kr/news/20011018/18-3-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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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저, 선봉으로 나서라(Rangers, lead the way).” 사단의 상륙을 지켜보던 노먼 코타 장군은 제5 레인저대대장을 불러 짤막하게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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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6월 6일. 아이젠하워 장군 휘하의 연합군이 프랑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감행할 때. 셀부르항이 있는 유타 해안에서는 미 제82, 제101공정사단의 공수작전에 힘입어 손쉽게 교두보를 확보했지만 그 옆 오마하 해안에서는 29사단이 악전고투를 하고 있었다.
>
>독일군이 로멜장군의 제안에 따라 구축한 대서양방벽, 특히 빗발치듯 쏘아대는 해안포는 미군의 상륙정을 수장시켰다.
>상륙한 병사들도 사기가 떨어져 돌격을 주저했다.
>사단장 브래들리 장군은 증원군을 다른 방면으로 돌릴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었다.
>그때 부사단장 노먼 코타 준장은 레인저대대장을 불러 돌파구를 열 것을 지시했다.
>`죽음을 무릅쓴 용맹한 돌진' 외에는 별다른 묘책이 없는 상황.
>레인저는 독일군의 기관총 세례를 뚫고 전진, 철조망 장애물과 해안진지를 파괴하면서 끝내 돌파에 성공했다.
>이곳에서 연합군 사상자는 3000여명에 달했다.
>
>미국 특수부대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미 육군특수작전사령부 예하 제75 레인저연대는 1756년 로버트 로저스 소령에 의해 창설됐다.
>그러나 미국 독립 이전인 1675년 `필립왕의 전쟁'으로 불리는 인디언과의 분쟁을 종결로 이끈 벤저민 처치의 레인저를 그 효시로 보는 경우가 많다.
>
>레인저가 본격적인 모습을 보인 것은 역시 2차대전 때.
>1942년 5월 당시 영국 총참모본부에 파견된 루시언 트러스콧 준장이 “독일군의 배후에서 기습상륙작전을 전개하던 영국군 코만도와 비슷한 특수부대를 창설하자”고 건의하자 조지 마샬 장군이 이를 즉각 승인함으로써 제1 레인저대대가 창설됐다.
>
>첫 전투는 대대 병력 가운데 49명이 1942년 영국-캐나다 특공대에 참여, 감행한 프랑스의 디페 기습작전이었으며, 이후 북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연합군의 반격작전에서 레인저 대원들은 알제리아의 아르주항구 점령작전에 앞서 작전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해안포대를 성공적으로 파괴했다.
>또 1943년 3월31일에는 조지 패튼 장군의 선봉으로 엘 궤타르 고지를 점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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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후 미 육군은 레인저 대대를 해체하면서 레인저교육과정만 남겨놓았다.
>그러나 6·25전쟁이 그들의 부활을 가져왔다.
>1950년 10월, 본부중대를 포함한 5개의 레인저중대로 재출범했다.
>그들은 1950년 12월 한국으로 와 미군 각 사단에 중대 단위로 배속돼 정찰·기습·매복·전술목표타격 같은 임무를 수행했다.
>특히 24사단에 배속된 제8 레인저중대의 한 소대는 2개 중대 규모의 중공군 수색대와 조우, 70여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두기도 했다.
>
>휴전은 또다시 레인저의 해체를 불러왔지만 베트남전은 레인저를 필요로 했다.
>미군은 1969년부터 72년까지 모두 13개 레인저중대를 보병·기갑·공정사단에 배속시켜 운용했다.
>그러나 에이브람스 장군은 육군참모총장으로 취임하면서 각 사단에 산재된 레인저중대를 통합해 제75 레인저연대라는 단일지휘체계로 발족시킬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1974년 제1, 2 레인저대대가 잇따라 모습을 보였다.
>
>1983년 그레나다 작전에서 레인저는 미국민들에게 그들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당시 레인저대대는 그레나다 남쪽에 위치한 살리나스공항을 500피트라는 저고도 낙하를 통해 기습했다.
>충분한 사전정보와 시간적 여유가 부족한 데도 불구하고 현지 유학중이던 미 의대생들을 구출하는 등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감했다.
>
>현재 제75 레인저연대는 2000여명의 병력으로 3개 대대와 지원부서를 구성하고 있으며, `기동타격대'적인 역할을 맡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통신·지휘시설 같은 특정 목표물을 기습, 직접 타격하는 임무를 주로 수행한다.
>
>이를 위해 각 대대는 순번제로 전세계 어느 분쟁지역이라도 18시간 이내 파견될 수 있는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으며 이때 해당 대대 지휘통제팀과 1개 중대는 9시간 내 출동 가능하다.
>특히 2대대는 한국 등 극동지역에서 분쟁시 가장 먼저 투입될 선봉부대다.
>레인저는 일반적으로 중대 단위로 투입되며 이점에서 12명이 한 팀을 이루는 특전부대(Special Forces ·그린베레)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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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럼스 장군으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경(輕·공수 가능한)보병'이라는 평가를 받은 레인저.
>노먼 코타 장군의 `선봉에 나서라'를 모토로 삼고 있는 그들은 오랜 역사와 전통, 명예 그리고 혹독한 훈련을 바탕으로 한 전투력으로 오늘도 미군의 선봉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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